약속도 증명도 하기 전에

Posted at August 24, 2010 17:19// Posted in communications

자동차 보험 만기일이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선택적 지각을 하게 된다. 오만 보험 광고란 광고는 귀를 쫑끗, 눈을 크게 뜨고 흡수 중.

외국계 보험사 중에 한국어 발음도 안좋으시면서 꼭 TV광고에 CEO가 나와서 광고를 찍는 곳이 있다. (몇 마디 되지도 않는 거 연습 좀 빡시게 하고 찍으면 안되는 거야?) 도대체 왜 자꾸 나오는건지 비호감. 예전 모 외국계 자동차 회사도 마찬가지. 국내 기업 중에 굳이 CEO가 나와서 한 마디 하고 싶어하는 곳은 ‘장수돌침대’ 말고는 떠오르는 곳이 없는데, 왜 자꾸 안 보고 싶은 얼굴을 내미시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 어떤 선한 의도로 얼굴을 내미셨던지 간에 대부분의 한국 소비자들이 어설픈 한국어로 말하는 그 분들께 극호감을 갖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암튼, 그 회사 가격이 괜찮다는 말에 고려상표군에 넣고 검토 중이었는데, 얼마 전 만난 친구가 말하길

그 사람 완전 백인 남자만 사람인 줄 아는 인종 차별주의자래, 나 아는 언니가 그 사람 비서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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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주먹을 불끈 쥔다. 뭐라카노!! 누군가 악의적으로 퍼뜨린 루머라고 해도, 그러잖아도 나올 때마다 채널 돌리고 싶게 비호였던 지라 내 태도는 콘크리트처럼 확고해진다.

약속도 증명도 하기 전에 우선 당신 가장 가까이에서 일해주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주는 건 어떻겠니. 사람들의 연결 고리가 짧아지면 짧아질 수록, 사람도 투명해지라고 요구받을 것이다. 요샌 그런 사람 없겠지만(호호호) 술자리에서 엄한 짓 하는 상사를 동영상으로 찍어 광장에 내밀거나 (그 상사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있을 수록 짜릿할 듯), 재떨이 맞아 멍든 이마를 올리거나 (역시 이제 그런 분 없겠지만), 여자인 직원 불러다가 니들은 대리 이상 승진할 건 꿈도 꾸지 말라는 망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 순간에 (친구가 S모사 계열사 다닐 때 실제로 있었던 일….) 그 목소리 녹음하여 올려주면 아주 재미날 것 같다.

예~ 차카게살자.

August 24, 2010 17:19 August 24, 2010 17:19


아빠와 딸기

Posted at August 16, 2010 02:09// Posted in diary

아빠랑 수다 떨던 도중 아빠가 처음 아빠 됐을 때 얘기가 나왔다. 출근 할 때면 니가 가지 말라고 붙잡고 우는 통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회사 가서도 한참동안 눈앞에 눈물콧물 범벅인 니 얼굴이 밟혀서 일이 안됐다고 했다. 얼른 퇴근하고 집에 가야지 생각밖에 안났다며. 일하는 엄마만 힘든 거 아니라고, 다만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훈련이 되어 티를 안낼 뿐이지 일하는 아빠들도 힘든 걸 여자들이 몰라준다 하셨다.

그래서 동생은 손해봤는지도 모른다고, 둘째 때에는 정을 좀 덜 붙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고도 하셨다. 요샌 세상이 달라져서 아빠들도 애기 보고 싶은 티 좀 내면서 사회 생활해도 오히려 패밀리맨이라고 좋게 평가해주니 부럽다고도. :)

하하 아빠 나는 일찍 들어오셔서 놀아준 거는 생각이 안나고, 아빠가 현관문에 들어서던 순간의 장면, 손에 까만 봉지가 들려있나 확인하던 거랑, 그 봉지를 받아들던 순간에 확 코에 번지던 딸기 냄새가 생각나. 나 안고 던지고 받기 하다가 천장에 머리 박고 완전 울었던 거랑. ㅋㅋ 허무하지???

아 그런 생각을 하셨을 나이가 지금 내 나이에 고작 몇 년 더할 뿐이니, 이제 와 생각하면 엄마도 아빠도 어리고 서툴렀구나. (어른에게 할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 시절,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의 엄마 아빠가 아주 대견하다.

August 16, 2010 02:09 August 16, 2010 02:09


네 취향이네

Posted at August 14, 2010 12:08// Posted in ebadak

소개팅이 어렵고 짜증난다고 느낀 건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무슨 음악 좋아하세요?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무슨 영화 좋아하세요? 주말엔 뭐하세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상대의 대답은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 감이 없었다.

어제 facebook의 like 버튼을 습관적으로 누르다가 아 진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겠더라. (우와, 저도 *** 진짜 좋아해요~! 한국에서 *** 아시는 분 처음 봐요~) 내 취향이 고스란히 정리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브랜드, 장소 등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나와 친한 사람들 정보까지 다 갖고 계시니, 안냥이 좋아한 무언가는 나도 좋아할 가능성이 높다. 내게 광고를 하겠다고 맘먹으면, 그 어떤 방식의 타켓팅보다 훌륭할 게다.(심지어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지도 몰라) 요새 디스플레이 되는 광고는 슬쩍 오싹할 때마저 있다.

이미 한 번의 클릭으로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기술이 있다하고,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해 잘 아는 존재들은 점점 늘어만 가겠지. 여러 계절을 만난 사람보다, 어쩌면 나 자신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존재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

게다가 위치정보까지 붙으면, 그는 나와 그 날 갔던 레스토랑이 어디었나 잊는대도, 사업자는 기억하는 날이 올 것 같다. 너, 너, 100일 전 이 날 한 장소에 있었드랬어(헉!) 최악으로는 payment 정보까지 붙으면(실제로 망+서비스+payment 다 갖고 있는데가 있긴 하자나), 그 때 먹은 메뉴는 뭐였고, 부가세 별도로 얼마가 나왔었어 (으악) 까지 알려줄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Like 버튼 따위 누르지 말고, 위치 정보 아무데다가도 넘겨주지 말고, 결재는 현금으로만 하면 이 무서운 상상에서 날 지킬 수 있을까? 아님 어짜피 변화하는 세계, 설픈 프라이버시 개념 따위 주커버그님의 지령에 따라 어여 잊고 그냥 광장라이프를 즐기는 게 맞는 걸까? 큰 형님께서 항상 너를 보고 계시다가, 괜찮은 물건이나 사람이 나타나면 네 취향이네, 하며 알려주시는 세상이 너무 금방 와버렸다. 아 무서워.

August 14, 2010 12:08 August 14, 2010 12:08


딸이 엄마보다 쎄

Posted at August 06, 2010 02:20// Posted in diary

오랜만에 설탕회사 아저씨들과 간 술자리는 어색했다. 노래를 부르지도 여자를 부르지도 않지만 그냥 술이나 조금 마실 뿐이지만, 참 희안하게 불편했다.

ㅈㅎㅅ님 딸래미의 전화 너머 목소리가 오늘 본 풍경 중 제일 재미있었는데, 같이 계시는 동안 딸래미 전화를 두 세 번쯤 받으셨으려나. 그러더니 11시까지는 터치 다운해야 한다며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생소했다. 내가 아는 그가 저런 아빠였던가. 귀찮아 죽겠다고, 거의 스토커라고 하면서도 지금 벌써 6학년이라며, 사춘기 지나고 나면 아빠랑은 멀어질 일만 남았다고, 귀찮아도 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얘 아니었으면 진작 이혼했지, 라는 말도 딸려왔다.

아빠 언제 들어오시는지 전화해보라는 엄마의 지령에, 나도 그렇게 전화를 걸었었다. 아빠가 조근조근하게 받은 전화도 사실은 사무실이 아니라 술집이었을까. 아마 그랬겠지. 지금 가면 막혀서, 할 일이 아직 남아서, 아빠가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등등. 12시 전엔 들어갈거야, 딸기 사다줄게. 울 아빠는 그다지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매일 매일 같은 학교 나오지도 않은 선후배 및 형님아우님들과 술자리 약속을 잡는 타입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 언제 오시냐고 식사는 하셨냐고 묻는 전화를 꽤 한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이건 아주아주아주 뻔한 초식이다.

반짝반짝 예뻤던 순간은 아주 금방 바래질 것이다. 지금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런 건 못할 거 같은데, 언젠가는 아이를 무기로 쓰는 뻔한 아내가 되는 날이 내게도 올까. 누군가에게 평생 여자로 보이고 싶은 욕망은, 세상에서 젤 이루기 힘든 일인듯도 하다.

August 06, 2010 02:20 August 06, 2010 02:20


그냥 일기

Posted at August 02, 2010 01:40// Posted in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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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리에서 석준옵이랑 나눴던 대화 중에 내가 먹는 게 곧 내가 된다는 이야기를 되새기고 있다. 석준옵은 14킬로가 빠진 상태로 나타나서 날 경악시켰는데(심지어 저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생각했다), 그의 체중감량엔 좀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으나 결론은 제대로 만들어진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였다.

나는 여행 끝에 큰 고민이 생겼는데, 벼룩에 물렸는지 빈대에 물렸는지 사지에 된통 두드러기가 나서 잘 낫지 않기 때문. 피부과를 바꿔가며 물어봤으나 원인이 무언지 의사도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해 준다고 하였다. 지난 주말엔 요플레를 먹었더니 다시 증상이 심해져서 먹는 것 때문인가 했는데, 이번 주말엔 햇빛 잘드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었더니 다시 심각하게 올라오는 것이다. 그럼 이건 햇빛 알러지란 말인가! ㅠ_ㅠ 게다가 피부과 약은 얼마나 독한지, 먹으면 우선 잠이 심히 쏟아져서 종일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고, 이렇게 잠이 오다보니 기운이 없는 건 당연.

대체 무엇을 계기로 내 immune system이 요 모양으로 망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막상 내가 이 꼴을 당해보니 아토피 등으로 고생하는 친구들 얼굴이 떠오르며 얼마나 하루하루가 우울할까 싶다. 역시 자기가 당해봐야 남의 어려움이나 아픔을 헤아린다. 더욱이 이사 후 얼굴도 뾰루지 만발에 엉망진창이므로 이대로 가다간 정말 대인기피 안 걸리면 신기한 노릇이다. 내가 내 팔다리를 보면서 징그러워 죽겠는데 타인은 오죽할까.

그래서 내일부터는 다시 도시락을 싸서 먹어볼까 싶으나 몹시 귀찮다. 아웅.



2.

다른 의미에서, 회사 생활에 있어서 망가진 immune system은 어쩌란 말이냐. 이제서야 생각해보니 그는 정말 훌륭한 보스여서, 우리가 해야 될 공부를 미리 다 하시고는 적절한 시점에 떠먹여 주셨는데 심지어 그 친절한 숟가락도 안 받아먹고 앉았었다. 정치가 필요없고 원칙만 있으면 되는 앞으로 만나기 힘들 희안한 보스.

있을 때 잘하란 말은 어느 순간, 어느 관계에나 통하는구나. 어짜피 우리 모두는 대체 가능한 존재, 언제 그랬냐 싶게 또 적응하겠지만 도대체가 맘이 싱숭해서 견딜 수가 없다. 본인의 행복을 찾아가신다는데 말릴 길도 없고.

나는 그가 가기로 맘먹은 다음에야 그와 비슷한 시간에 출근을 하고, 머슥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이게 뭐 별 거라고 말 안듣고 땡깡이었을까. 아 속상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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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행복해서 이래도 되나 싶었던 지난 일요일과 달리 이번 주말은 맘이 평화롭지 못하다. 나갈 준비를 하고, 그를 기다리던 마음과, 너무 좋았던 날씨, 내 손에 느껴지던 체온. 며칠만에 그 때 느꼈던 그 마음이 갑자기 현실감이 없고 나의 행복같지 않아서, 그가 사준 핸드폰 껍데기만 만지작 만지작거렸다.

ㅈㅇ이는 무려 열 번째 여자친구를 만들려고 하니 다 허무하다고 이제 장가가고 싶다고 했다던데 ㅋㅋ 좋은 마음도 결국 타이밍일지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 사람 만들어준 누군가는 다른 이에게 평생토록 참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다들 언젠가는 철나고 어른된다. 사람마다 때가 다을 뿐.

August 02, 2010 01:40 August 02, 2010 01:40


피부로 느껴요

Posted at June 21, 2010 20:46// Posted in diary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여러 모로 불편하다. 나는 이렇게 먼 거리를 통학 또는 통근해 본 적이 없다. 학교는 늘 걸어서 10분 거리로 이사를 다녔고,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엔 매일매일 오만가지 사고가 많구나 놀라는 중이다. 또 이 정도면 운전 이제 잘한다며 으쓱했던 게 부끄럽다. 아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센 톤으로 욕을 해주고 싶을만큼 운전 습관 이상하게 든 사람들 많더라. 새삼 운전하고 돌아다니는 게 얼마나 겁나는 일인지 실감하는 중.

무엇보다 난처한 건 새집증후군이다. 얼굴이며 가슴팍이며 등이며 울긋불근 여드름인지 뭔지 빨긋빨긋 트러블이 잡아도 잡아도 튀어나오는 두더지처럼 올라온다. 엄마는 나이에 안 어울리게 아토피를 앓고 있다. 아빠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앓는 소리를 내며 자도 잔 거 같지 않다고 툴툴거린다.

난생 처음 땅을 딛고 있는 집에 살아보고, 다시 이 고층 아파트에 살아보니 알겠다. 이 공간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는 걸, 그야말로 진짜 “피부로” 느꼈다. 먹고 입고 사는 기본적 조건들에 우리가 알지 못하고 컨트롤 할 수 없는 위험이 너무 많다. 도대체 무얼 넣어 지었길래 사람을 이렇게 못살게 구는지. 과학이며 기술 발전이 으시대며 자리 잡은 그 위치에서 슬슬 내려오셔야 할 때인 거 같다. 도대체 나아진 게 뭐란 말이요!

June 21, 2010 20:46 June 21, 2010 20:46


잘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에 대하여

Posted at June 13, 2010 23:28// Posted in diary
금요일 밤부터 고장난 수도꼭지마냥 울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으나, 과거의 관계에서 배운 한 가지는 이런 예감이 들었을 때 내가 노력한다고 나아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거다. 여우 9단짜리 언니들의 가르침은 내게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내 안에 없는 걸 동원할 수는 없는 일.

눈이 떠지지 않을 때까지 울면서, 잘 사랑하고 잘 헤어지는 일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나를 두고 가버린 사람과, 내가 두고 떠나온 사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방법을 다 해 붙잡으려고 노력했던 사람과, 나를 잡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자주 일어나지 않고, 또한 얼마나 애처롭게 짧은 시간 안에 바래지는지도.

헤어지는 장면 중 가장 좋은 건 호수 옆이었다. 자기 편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남자를 의리도 예의도 없이 버리려는 나에게 그는 여기 말고 다른 장소에서 헤어지자고 제안했다. 헤어지는 장면이라도 좋은 그림이었으면 한다고. 긴긴 시간동안 서로 주고 받은 상처가 수도 없지만(주로 강타를 날린 쪽은 나였다), 좋은 이별이었다. 헤어졌으되 계속 그가 잘되기를 응원하고 기도하는. 아마도 그도 나를 생각할 때 마찬가지일거다(라고 맘대로 착각한다). 감정의 업다운이 심한 나를 그는 긴 시간동안 잘 다독여 주었고, 문제가 있으면 함부로 놓지 않고 늘 풀려고 노력했다. 내 이십대에 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흉터 많은 인간으로 나이들지 않았을까. 이제와 생각하니 그 어리광과 떼쓰기, 의존하기 등등을 받아주었던 게 감사하다.

가장 나쁜 이별 장면은 배경이 없다. 구구한 설명이 없다. 문자도 전화도 메일도 없다.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연락이 끊어진다. 너를 사랑했지만 유효기간이 다한 것 같다고 이제 너를 봐도 어저꾸 저쩌구 하는 뻔한 문장도 없다. 거꾸로 물을 뿐이다. 너, 연락 없는 걸 보니 헤어지자는 말로 알아 들을게. 안녕. 혼자 북치고 장구치며 정리하려면 눈물이 배로 든다.

잘 사랑하고 헤어지기란 너무 너무 너무 어렵다. 아직 잘 사랑해서 평생 사랑하게 되어 본 적이 없으니, 내가 할 줄 모르는 건 이야길 못하겠고,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 들이는 노력의 약간만이라도, 헤어질 때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학교에서 헤어질 때의 예의 같은 걸 교양으로 가르쳐야 되는 게 아닐까 뻘한 상상도 해본다.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면, 비슷한 장면이 가까운 미래에 있을 것 같아 두렵고 겁난다. 당신이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날 시작하고 믿게 만들었으면서. 혹 당신 뜻이 그러하다면 부디 예의바른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얼굴을 마주하고. 정 안되겠으면 열 문장 이상의 편지로. 최대한 사실적인 표현을 담아 미련 따위 안 남길 수 있도록. 가장 좋은 건 내 예감이 틀리는 거지만....

엊그제 후배의 말에 식겁했다. 그 놈 말하길, 자긴 어장관리 당하는 게 좋다며 부담스럽지 않고 좋지 않냐고 했다. 또 다른 후배 말하길 자긴 요새 너무 바빠서 이미 남자친구 있는 여자가 세컨드로 자길 만나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고, 음식 만들때도 자꾸 간보면 막상 다 만들었을 때 맛이 없단 말이다. 어른들은 많이 만나보라며, 그래야 사람보는 눈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냥 자극의 역치만 올라갈 뿐인 거 같다.

어짜피 달라지지 않을 걸 알면서 나는 또 노력이나 하고 있을 예정이다. 어쩌면 내 남자보는 눈을 바꾸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인데, 그게 잘 안되니까 문제다. 이제 내 맘 내 감이 끌리는 남자면 우선 의심부터 하고 봐야하는 걸까. 당신, 내 질문에 분명하게 약속하지 않을 때 왜 나는 당신을 버리지 못했을까. 혹은 왜 나만 바라보며 안달하는 남자를 나는 사랑할 수 없었을까. 그렇게 울고도 아직 속이 너덜거린다.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을텐데. 매번 최선을 다해 빠지고 최선을 다해 상처받고 있는 내가 한심할 뿐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의 아이러니가 모두 내게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 남자 취향이 내가 쉽게 이루지 못하는 것/가지지 못한 것의 대리만족은 아닌지 생각했다. 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내가 이룰 일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남자와 그를 좌지우지하는 여자의 롤플레이는 내가 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은 아닌 거 같다. 눈물을 두 바가지쯤 쏟아낸 후에야, 무능력을 인정하겠어요. 퉁퉁 부은 눈으로 거울 속의 나를 본다. 아, 미련한 곰같으니.
June 13, 2010 23:28 June 13, 2010 23:28


알랭 드 보통 TED talk

Posted at June 06, 2010 19:29// Posted in inspiration/people


<불안>을 말로 풀어서 이야기 하는 버전.
June 06, 2010 19:29 June 06, 2010 19:29


어버이날 맞이, 사랑에 대해

Posted at May 08, 2010 12:41// Posted in diary

1.

시속 200km 넘게 밟는 차에서 겁내기는 커녕 이거 너무 재밌다며 신나하길래 결혼했다. (체스터님)
GIS 전공한 여자가 어쩌다 SI회사에 취업해 고생하길래 프로그래밍 좀 가르쳐주다가 결혼했다. (울 이사님)
이 여자 나보다 더 심하길래(?) 결혼했다. 그래서 별명도 덕후옹주다. (김국현님)
이 남자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서 치밀하게 기획하여 사고 쳐서 잡았다. (절대 누구라고 말 못하지. 오빠는 평생 모르셔야 함! ㅎㅎ)
유학갔다 방학에 한국 들어와서, 집에서 선보라 그래서 나갔다. 근데 얼떨결에 약혼하고 결혼하고 정신차려보니 애가 둘이다. (아직 이 애 엄마 스물일곱인가 여덟밖에 안됐다. 게다가 그 사이에 박사까지!)
같이 사업하며 가열차게 싸우다 보니 미운정 고운정 들어 결혼했다. (히히 너무 단순화시키나, 쏭언니와 동훈오빠)
옆 자리 앉은 여직원한테 반해서 사내 경쟁자 2명을 제치고 열렬하고도 스릴 넘치는 연애 끝에 결혼했다. (울 아빠)
따라다니는 남자들 다 싫었는데, 이 남자는 어쩌다 같이 우산을 썼는데 하나도 안 불편하고 마음 편해서 결혼했다. 게다가 나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큰 소리 쳤다. (울 엄마)

주위 의견을 종합하면, 하고 많은 사람중에 하필 이 사람이랑 한 침대에서 평생을 늙게 되는데는 생각보다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평생을, 어려운 문제를 같이 잘 풀면서, 힘든 일을 잘 지나 보내면서, 좋은 일에 한껏 기뻐하면서, 어떻게 같이 잘 사느냐가 아닐까.

 

2.

주변을 보면 부모가 되는 건 꽤 골치 아프고 어려운 일인듯 싶다. 더군다나 한국 상황에서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안 쉬운게 분명하다. 좋은 학교를 보내고 좋은 교육을 시키고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해주고…. 그래서 결국 나의 계급을 뛰어넘을 훌륭한 2세(?)로 키우기 위해 오늘도 부모된 자들은 불철주야 노력중이시다.

엊그제 출근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내 팔을 잡더니 슬픈 표정으로, 엄마가 능력이 없어서, 너 유학도 못 보내주고 더 클 수 있는데 못 키워주나 싶어서 미안해, 라고 한다.

아 엄마 무슨 말이야 내가 퍼져서 공부 더 안하는거에요 나 공부 지금은 하기 싫다며 신경질 팍 부리고 뛰쳐나와선 차 안에서 징징운다. 아이 평생 그렇게 충분히 해주고도 뭘 더 해주고 싶어하는 거야, 그래서 부모고 난 자식인거야, 난 왜 이 모양인거야 하고.

 

3.

생각해보면 엄마는 너무 여렸고, 아빠는 아주 서툴렀다. 아빠는 특히 분노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잘 몰라 나와 동생에게 상처 주는 일이 잦았고. 한번 날렸다 하면 이건 완전 스크래치가 아니라 칼로 푹 돌려서 후벼팠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어른스러워(?) 지셨지만. 엄마는 보통의 한국 아줌마들과는 달리 평생 그 상황을 전혀 중재하지 못했다. 난 늘 엄마를 엄마이기보다 여자로, 무르고 여린 사람으로 여겼다.

막내 아들과 결혼했으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고, 돈 모아 고모들을 시집보냈고, 접대할 일이 있는 부서에서 근무할 땐 세 시고 네 시고 관계없이 취한 아빨 태우러 광화문으로 출동하던 엄마. 불면증이 있던 아빠가 잠들라치면 고3때도 얄짤없이 아빠 주무신다며 나가라고 날 내쫗던 엄마. 그리고 온 집안을 돌며 전화 플러그를 뽑아버리던 모습. 그리고 아빠 아팠던 몇 해 동안 완전 지극하여, 결국 아빨 낫게 한 대단한 아짐마. 아빠는 주말마다 들로 산으로 놀러갈 계획을 세우느라 바쁜 사람이었고 (동생이랑 오늘은 집에 있으면 안되냐고 울었었다) 거의 저녁은 집에 와서 같이 드셨다. 엄마가 만든 그 어떤 심하게 창의적인 음식에도 커맨트 하는 법이 없었고, 늘 맛있어 죽어가는 표정이었다(혹시 미맹이었나? ㅋㅋ). 물론 우리에게도 식탁 앞 투정따위 허락해 주지 않은 건 당연. 니네 엄마처럼 착한 사람 예쁜 사람 또 없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셨고.

아무튼, 중요한 건 아빠도 엄마도 서로에게 충실했고, 한 팀이었고, 육십을 앞 둔 이 날 이때까지 아직도 서로에게 이제 내가 남자로/여자로 보이지 않냐며 토라지고 투정 부리고, 사랑한다는 거다. 보고 있으면 어이없을 때 많아. 내가 내 부모를 (감히) 평가할 때 가장 좋은 점수를 드릴 수 있는 건 서로를 심하게 사랑했고, 사랑한다는 점이다. 나머지 어떤 내용도 그 사랑 앞에 의미가 없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 아들에게 좋은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고, 그 지위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적절한 삶의 태도를 프로그래밍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도 안 되어 본 주제에 이런 말 하는 게 웃기지만) 아이는 많은 부분 이미 본성과 자기 자리를 갖고 태어나고, 양육으로 저 아일 어떻게 저떻게 하겠다는 건 좀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좌뇌형 인간들이 보면 비웃을런지 모르나. 충분히 사랑으로 가득한 집의 분위기와 내가 조건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애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그러니까 그 무엇보다, 사랑이 먼저다. 그에 뒤 따라온 모든 것들도 부모님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이었고 최고였지만,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는 게 정말 세상 최고로 좋았다. 단, 나도 이렇게 사랑하며 살거라고 기대하게 만드신 게 좀 걱정스럽긴 하다. 난 내 어버이들처럼 살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다. :-)

May 08, 2010 12:41 May 08, 2010 12:41


모바일

Posted at May 05, 2010 21:48// Posted in inspiration/daily life

1. 모바일앱과 웹

얼마전 이 주제로 세미나도 했던 걸로 아는데, 생각을 계속 해보기 위해 메모.

며칠 전, 영화 예매를 하고 있었다. 메가박스도 롯데시네마도 앱이 있는데, CGV가 없다. 이런 설탕회사같으니, 하며 궁시렁거리며 웹사이트에 들어갔더니, m.으로 시작하는 모바일 페이지가 있네. 베타를 달고. 이 날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영화가 없어서 메가박스에 갔고, 오늘 CGV로 영화 예매를 해봤는데 무리없이 잘 된다.

cgv lotte mega
왼쪽부터 CGV, 롯데, 메가박스 예매 페이지

여러 플랫폼을 고려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야하는 사업자 입장에선 앱으로 패키징 하는 것보다 웹으로 만드는 게 자원 배분 측면에서 나을 거 같다. 나중에 윈모나 안드로이드에서도 CGV 예매 해봐야징. 각 플랫폼을 모두 고려하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배포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잘 실감이 안되는데, 꽤 귀찮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근데 PC랑 다를 거 뭐 있다고, 이렇게 쉽게 거래 승인이 떨어져도 되나? 이거 보안에 문제 없는 거 맞누…. 이런 생각에 신용카드는 안쓰게 된다. 핸폰 소액 결재했다.


2. 평점시스템

영화도 그렇고 레스토랑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어딜가나 별 다섯 개 만점을 주도록 되어있다. 근데 늘 그렇듯 나와 취향 상관없는 ‘불특정 다수’의 평을 봐야 하는 게 맘에 안들고 선택할 때 불편하다. 엊그제 본 영화(킥애스)도 예매율은 0.4%인가로 제대로 낮았는데 완전 재밌어서 어쩔 줄을 몰랐으니까. 레스토랑은 어떤가. 윙버스 맛집 평가는 보고 있으면 가끔 너 알바지 가서 물어보고 싶을 때도 있고. 내 연락처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의 추천 리스트를 가까운 순서대로 볼 수 있으면 환상적일 것 같다. 오늘도 평점 시스템과는 전혀 관계없이 아날로그의 세상에서 추천 받은 영화(블라인드 사이드)를 골랐다. 동호, 재희님 고맙.

개인의 취향과 물리적 위치와 사회적 관계의 결합, 그리고 이 결합을 토대로 일어날 크고 작은 구매결정. 상상해보니 완전 재밌을 거 같다. :) 두근두근.

May 05, 2010 21:48 May 05, 201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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